국선도본원 지리산 백궁선원
국선도 본원은 장소적 의미보다는 국선도법의 근원이 되는 수도정신과 청산선사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보급하고 전수하는 국선도의 원천이라는 중심체의 의미를 가집니다. 40여 년간 서울 종로3가 백궁빌딩과 안국동 안국빌딩에 위치했던 본원은 이제 지리산 백궁선원에 자리합니다.
백궁선원이 자리한 곳은 원래 고려시대의 절터로, 조선시대 성종 때 지어진 동문선 (東文選)의 지리산 수정사기(水精社記)에 의하면 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 출신인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이 터를 발견하고 1129년 진억대사(津億大師)가 오대사 (五臺寺)라는 절을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이 오대사라는 이름보다 수정사(水精社)로 널리 알려져 있던 점과, 수정사 라는 이름에 ‘절 사(寺)’가 사용되지 않고 ‘두레사(社)’가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승려 진억이 이곳에 ‘수정결사’(水精結社)라는 수행 공동체를 결성하고 그 결사에 무려 3,000명 이상의 뜻있는 승려들이 참여하여 함께하였기 때문인데, 결사(結社) 란 뜻을 같이하는 도반(道伴)들이 불교에 대해 자각:성찰하고 올바른 수행을 위하여 맺은 단체라는 의미로 이러한 모임의 장소를 ‘사(寺)’가 아닌 ‘사(社)’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동문선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수정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온화롭고 엄숙해, 잘못이 있으면 충고하고 잘한 일은 칭찬하여,
서로 자극을 받아 밤낮으로 노력하며 함께 서방에 이르기를 목표로 하였다.
우수한 사람이나 덕망이 높은 이로서 사원에 거처하는 이에게는 일정한 법규에 구애되지 않고
경을 읽던가, 염불을 하던가, 참선을 하던가, 공부를 하던가 간에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도록 하였다.
사(社)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그가 생존했거나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쪽에다 이름을 새겨둔다......
이것은 구름처럼 모여든 대중과 함께 해탈을 얻어서 미래의 세계까지 꺼지지 않는 법의 등불을 점하려 함이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축으로 하여 우람하게 흘러 내려오는 백두대간은 곳곳에 서 강을 띄어 사람의 마을을 품고, 길을 만들어 산짐승을 품으며, 지리산에서 다시 우뚝 용트림 하였습니다.
이 땅 곳곳에 하늘과 땅의 맑은 기운[仙氣]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지만 우리가 유독 지리산을 다시 그려보는 것은 그 곳에는 원래 세상의법칙 보다 더 밝고 높은 하늘의 법을 찾아서 떠난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결국에는 하늘의 법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세상을 놓고서도 지리산의 한 부분이 되어있거나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듬뿍 받아낼 수 있는 길, 움직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하늘의 법에 드디어 이르는 길이 되어 있음을 우리가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지리산은 우리에게 살갑고 경건하고 무서운 그런 산입니다.
바로 그 지리산 큰 품속, 주산이라는 봉우리 밑에 국선도 정신을 보존하는 곳이자 청산선사의 가르침을 유지하고 법통을 수호하며 국선도의 원천이 되는 자리인 국선도 본원이 뿌리 내리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등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세상과 한 몸이 되기 위하여,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허겁지겁 매달리는 허상을 지우고 정말 소중한 것을 보기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던질수 있는 수련의 터전이자 본원(本源)입니다.